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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n/나무&꽃

제사상 지킴이 우리배 이야기ㅡ박상진교수

 

 

 

 

올해는 유난히 추석이 빠르다. 옛 농경시대부터 풍요로움의 상징이었던 명절이다. 한해 농사의 수확물을 제사상에 올리고 내년에도 조상의 음덕을 내려 주십사고 정성껏 제를 올린다. 조율시이(棗栗柿梨)라 하여 제사상의 첫줄 맨 끝에는 배가 놓여진다. 시원하고 달콤한 배는 아주 먼 옛날부터 선조들이 좋아하는 과일로서 자리를 잡았다.
배나무에 관한 기록은 고구려 양원왕 2년(546) ‘서울(평양)에 가지가 서로 맞붙은 배나무가 있었다(王都梨樹連理)’라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처음이다. 이어서 신라 때는 해인사 창건기록에 배나무가 등장한다. 애장왕의 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온갖 약을 다 써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임금은 깊은 산골에서 도를 닦는 기인을 비롯하여 병을 고칠 수 있는 성인을 찾아오도록 명령했다. 명을 받은 관리들이 전국을 헤매다가 가야산 꼭대기로 상서로운 기운이 뻗친 것을 보게 되었다. 발원지를 찾았더니 마침 가야산 아래서 도를 닦고 있던 순응과 이정 스님의 거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놀란 관리들은 두 스님을 찾아 같이 가기를 권하니 거절하면서 한 가지 방법을 일러주었다. 스님은 전대 속에서 분홍 실을 꺼낸 후 건네주면서 "이 실의 한 끝을 궁궐 후원에 자라는 배나무에 묶고, 다른 한 끝은 종기에 붙여놓으면 바로 나을 것이다"라고 했다. 관리는 한달음에 궁궐로 돌아와 그대로 했더니 배나무는 말라 죽어버리고 왕비의 종기는 깨끗이 나았다. 임금이 감격하여 스님이 머물던 곳에 절을 짓게 하니 바로 오늘날의 해인사이다.

 

이성계가 심었다는 천연기념물 386호 진안 은수사청실배나무


고려 때도 여러 건의 배나무 관련 이야기가 있지만 태조 이성계는 배나무와 인연이 특별히 깊었다. 그는 무학대사 토굴이 있던 곳에 절을 세우고 배나무를 손수 심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가 일찍이 친한 친구들을 모아 술을 준비하고 과녁에 활을 쏘는데, 배나무가 백 보(步) 밖에 서 있고 배 수십 개가 서로 포개어 축 늘어져서 있었다. 손님들이 태조에게 이를 쏘기를 청하므로, 한 번에 쏘아서 다 떨어뜨렸다. 가져와서 손님을 접대하니 여러 손님들이 탄복하면서 술잔을 들어 서로 하례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궁(神宮)으로 알려진 태조는 이처럼 활솜씨 자랑에 배나무를 이용한 것이다. 제사에 관련된 내용은 문종 원년(1450)"금년에는 왕실 과수원의 배나무가 전혀 열매를 맺지 않아서 제사에 올릴 배도 없습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꽃피는 시기가 아닐 때 꽃피어 이상기후를 나타내는 기록이 여러 번 나온다.

 

돌배 

 

만발한 청실배나무 꽃 

 

청실배


옛사람들은 산에 자라는 돌배나무 중 맛이 좋고 알이 굵은 나무를 골라내어 키우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찾아낸 품종은 청실배나무, 황실배나무, 취앙네, 문배나무 등이 옛 문헌에 남아있다. 그러나 전통 배나무 는 대부분 실물이 사라져 버렸지만 청실배나무만은 명맥을 유지하여 큰 나무로 살아남았다. 이성계가 심었다는 진안 은수사 청실배나무는 키 15.0m, 둘레가 2.5m로서 아직도 청실배를 주렁주렁 매달만큼 건강하다. 그 외 정읍 두월리에는 아름드리 청실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청실배나무도 여러 그루 더 있다. 청실배는 일찍 익으며 처음 푸른빛을 띠나, 따다 두면 차츰 노랗게 되고 즙이 많아 감칠맛이 일품이다. 옛 기록으로는 춘향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도령과 성춘향이 첫날밤을 치루기 전, 월매가 차려주는 주안상에 올라오는 여러 과일의 하나로 청실배(靑實梨)가 들어있다. 

 

산돌배

 

천연기넘물 408호 울진 쌍전리 산돌배나무


원래부터 우리나라에 자라던 배나무는 산돌배나무와 돌배나무가 원종이다. 아름드리 굵은 고목나무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산돌배나무는 울진 쌍전리에 자라며 키 17.0m, 둘레 4.1m로서 나이는 약 300년 정도 되었다. 돌배나무는 청도 상리 청도 김씨 사당에 자라는 키 16.7m, 둘레 2.8m에 나이 약 200년짜리가 가장 큰 고목나무다.

 

 

창덕궁 낙선재의 돌배나무

 

창덕궁 낙선재 안에도 키 13m, 둘레 2.3m, 나이 200년 남짓으로 짐작되는 돌배나무가 조선말기의 험난한 역사를 지켜보아오면서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외 최근 천연기념물 지정된 영양 무창리 산돌배나무, 산림청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돌배나무나 산돌배나무만도 20여 그루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