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느강 불빛에 빠지다
손헌숙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 옴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한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사랑은 흘러간다 이 물결처럼 강물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시인의 삶 한 기슭
할머니 배낭이 열린다
갈래머리 소녀의 도도한 칼라가 걸어 나온다
선생님의 몽당 분필 압박의 속사포
책장 넘기는 소리
하품터지는 소리
둔탁한 나팔 신호
제 갈길 잃은 책상들의 분탕
붉은 목조 바닥 위
미끄러지듯 달려오는 물든 양발들
둔탁한 나팔 신호
사열(査閱)하는 책상들의 숨 고른 함성
책장넘기는 소리
하품터지는 소리
부픈가슴,
고고한 세느강 물줄기에 연정이 핀다
아뿔싸!
삼천갑자 동방석이 세느강을 건넸구려.
<기욤 아폴리네르시 ‘미라보다리’ 삽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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