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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창작시

시 한편 소개합니다




벽시계 / 김형수 (2014년 미래시학 등단)


폐가 마루 벽

벽시계는 세상을 뜬  마지막 시간을 적어 놓았다

죽을 때까지 일대기를 쓰고 간 벽시계는

이제 잠잠하다

한 때 집안의 중심이 되어

시간의 앞에서, 혹은 뒤에서

시간을 호가호위하며 온 집안을 호령하고

댕댕거리며 학교를 보내고 밥을 주고

기상과 취침의 일사불란한 질서를 주재했겠지

시간이란 절대권력을 째각째각 폭탄처럼 지고

사열대 위의 장군처럼 내려다보고 있었겠지

그러면서 시간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보고

벽시계는 스스로 시간이 되는 꿈을 꿨는지 몰라

가당찮게 영원하고자 했을 때 녹은 스는 법

시간은 머물러 녹슬게 했으니

그는 시간의 파발마였을 뿐

육신이 시간을 쫓아가지 못하자 그는

백성을 잃는 독재자의 외투처럼 버려졌다

못 하나에 목을 걸고 죽었지만

하루 두 번 정확한 시간이 다녀간

바람 한 줄기 그의 열대기를 훓고 가는 오후

벽시계는 거미 한 마리 불러들었다

또 누군가의 쓸모가 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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