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비밀 문서가 담긴 바티칸 시국(市國)의 창고가 드디어 열렸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기록, 사랑을 찾아 왕비와 이혼하려다 파문 당했던 영국 왕 헨리 8세의 이혼 문서, 11세기 교황의 영적 권리와 세속적 권한을 인정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칙령 등 100점의 비밀 문서가 공개된 것이다.
바티칸은 비밀 서고 설립 400주년을 맞아 사상 처음으로 유물을 전시했다.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분할 통치하도록 한 15세기 알렉산드로 6세 교황의 칙령, 1789년 프랑스혁명 후 수감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나와 슬픔을 함께하는 이들의 감정만이 이 상황에서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이라고 적은 편지가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 외에도 남명(南明·명나라 멸망 후 남부에 존속한 정권) 마지막 황제인 소종(영력제)의 모후인 왕씨가 1650년 바티칸에 "구해 달라"며 보낸 서신, 북아메리카 인디언 오지브와족 추장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편지도 함께 전시됐다. 이날 전시회를 찾은 지아니 알레만노 로마시장은 "이번 전시는 수세기를 거쳐 내려온 비밀 기록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평했다.
이번 전시는 가톨릭교회의 비밀을 찾는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회 개장 전부터 교황청 비서인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추기경은 이 소설에 반감을 보이며 "전시회 유물들을 통해 소설의 허구에서 벗어나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벌써 외신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교황 비오 12세 시절의 기록이 '현대판 다빈치 코드'가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교황청 측은 그동안 "비오 12세가 남모르게 유대인 학살을 막아 왔다"고 주장해 왔다.
비오 12세 시절의 기록은 200만 개의 파일로 구성돼 있으며, 모두 공개되는 데 1~2년은 걸린다. 교황청 측은 "교황은 비오 12세 시절의 기록을 공개하는 것이 논란을 잠재우고 교회에 득이 된다고 보는 입장"이라며 "이르면 1년 안에도 공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폭발력 있는 다빈치 코드가 나올지 여부는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이현택 기자mdf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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