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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uality/*해외성지

순례 10,11ㅡ요르단

 

요르단 성지순례 안내
1. 국가개요

  요르단은 아라비아 반도의 북서부에 위치한 나라로 우리 나라 남한 크기에 현재 500만명 정도이다.
  구약시대에 여호수아의 영도 밑에서 이스라엘은 이 지역을 정복하고  르우벤, 갓지파와 므낫세지파의 반에게 분배한다. 나바트 시대, 로마 시대를 거쳐 주후 7세기 이후 이 곳은 이슬람화되었다. 1927년 영국의 위임통치 하에서 트랜스요르단(요단고원) 수장국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팔레스틴의 땅 이름이 요르단강 서안지역으로 한정되었다. 제2차 대전 후인 1946년 영국의 위임통치 폐기로 정식으로 독립국가가 되고 뒤이어 1949년 팔레스틴과 합병한 후, 정식 국명을 요르단 하세미트 왕국으로 변경하여 독립국가가 되었다. 현재의 요르단 왕국은 구약시대의 에돔(사해 남부), 모압(사해 동부), 암몬(요단강 동편)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아랍 국가들 중 가장 수준이 높다고 자부하는 요르단은 교육수준과 물가가 가장높다. 국가의 최고 행정권은 국왕이 갖고 있으며 국무총리를 통해 행사한다. 남북한과 동시 수교국이며 한국과는 1962년 국교를 맺었고 치안은 중동국가 중에서 가장 안정적이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이나 기독교에 대해서는 어느 이슬람 국가보다 우호적이다.
  기후는 중앙 지역에 위치한 수도인 암만의 평균 기온이 1~2월은 섭씨8~9도, 한여름인 7~8월에는 23~25도 정도이다.


2. 여행일반

  화폐단위는 디나르를 사용하며 시차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썸머타임 적용기간은 6시간). 종교는 약 500만 인구중 수니파 이슬람이 90%나 차지하고 있다.
  한국과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비자 면제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요르단으로 들어가는 국경은 항공편으로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암만으로 들어가며, 2003년도 새로 개설된 카타르 항공을 통해 카타르 도하에서 암만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외 레바논이나 이스탄불에도 운항하고 있다. 배편으로는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동쪽에 있는 누에바에서 입국할 수 있다.
육지로는 이스라엘 남쪽 항구인 엘랏과 여리고 앞의 알렌비, 그리고 벧산으로 들어갈 수 있으나 알렌비를 통할 때는 미리 비자를 받아야 한다.


3. 주요 성지

(1) 바위 지역의 페트라(셀라)
  셀라(Sela, 페트라; Petra)는 사해 동남쪽 8㎞ 지점의 작은 분지에 있는 나바테아 왕국의 수도이다. 이 곳은 와디 무사를 따라내려가 높은 절벽들로 이루어진 대협곡을 통과하면 도달하게 된다. 이 골짜기는 길이가 1.6㎞ 가량 되어 성읍을 위한 훌륭한 방어선의 역할을 했다.
  셀라라는 이름은 고대의 정착지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으며 지금은 페트라(Petra)라고 부르고 이전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셀라였다(삿1:36, 왕하14:7, 사16:1). 페트라는 “바위”를 뜻한다. 이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가 많은 산들은 붉은 색이 아름답게 얼룩져 있는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은 자연석을 파서 만든 묘와 그에 딸린 장식물로 뒤덮여 있다. 이것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주로 나바테아안의 시대인 BC4세기 경부터이고, 로마령으로 합방된 후(105년) 로마인들이 많은 건설을 했는데 그 흔적으로 돌로 된 포장도로, 공중목욕탕, 야외극장등의 폐허가 근래에 많이 발굴되고 있다.

 

 

 

 

 

 

 

 

 

 

 

 

 

 

 

 

 

 

 

 

(2) 와디 롬(Wadi Rum)
사막 한 복판에 서있는 사암으로 된 갖가지 모양의  바위로 된 만물상. 아랍과 오스만터키의 전쟁 때 영국의 로렌스 장군이 아랍군을 이끌고 활약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부탁받은 발람이 온 길이기도 하다(민22:21~30).

(3) 모압족의 수도였던 길하레셋(Kir-Hareseth)
  길하레셋은 아르논 남쪽 28.4㎞, 사해 동쪽 17.6㎞ 지점에 있는 고대 모압의 수도로 오늘날 케락(Kerak)이다. 해발 933m 고원에 위치한 이 곳은 주변의 언덕과 깊은 계곡들로 인해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이 곳은 이사야의 신탁에서 두 번 언급되었으며(사16:7,11), 예레미야서에도 두 번 나온다(렘48:31,36). 사15:1에 나오는 길(Kir)도 길하레셋으로 본다.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왕은 공물을 거절하고 배반한 이곳을 남유다의 여호사밧왕과 연합하여 공격했으나 함락 직전 본국의 사정으로 포위를 풀고 귀국했다(왕하3장). 이 성읍의 바로 밑에는 수로로 추정되는 180m 정도의 터널이 있다. 1924년 발굴을 통해 모압인과 로마시대부터 중세 아랍시대의 도기들이 발견되었다.

(4) 세례요한이 죽은 마케루스 요새
  마케루스는 이스라엘 지역에 있는 헤로디움과 마사다와 함께 헤롯이 건설한 요새로 이곳에서 세례요한이 순교했다(마14:1~12).

 

 

 

마케루스, 곳곳에 동굴들이 보인다. 

 

세례요한이 2년동안 갇혀 있던 곳으로 알려진 동굴감옥 입구 

 

 

 

 

 

(5) 모세가 죽은 느보산
  느보산은 비스가산이라고도 하는데 여리고 맞은편 요단강 하구 동쪽 약 20㎞ 떨어진 아바림 산맥에 있는 산이다. 모압 평야 동쪽에서 볼 때 하나의 돌출부만 보이나 서쪽에서 보면 큰 산으로 보인다. 멀리 보이는 느보산이 연봉이고 오른쪽에 사해가 반짝인다. 일부 학자들은 비스가는 아바림산맥에 있는 한 봉우리이고 느보산은 그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석하고 있다. 이 산은 발락이 발람을 소빔(Zophim)들로 인도하여 이 산 꼭대기에 이른 곳이며(민23:14),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땅을 바라 보라고 지시받은 산이며(신3:27), 또 죽은 곳이다(신32:49). 현재 이 산 꼭대기에는 모세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놋뱀이 세워져 있다.

(6) 메드바 교회와 교회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 지도
  메드바는 느보산 남쪽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요단강 입구의 남동쪽으로 약 24㎞ 지점에 있다. 요르단 고원에 있는 이 곳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점령 당하기 전에 아모리 왕 시혼에게 정령당한 모압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 점령당한 후(민21:30)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수13:9,16). 다윗 때에는 암몬인 손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대상19:7). 모압 비석에 의하면 북이스라엘의 오므리왕은 메드바를 다시 찾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 아들 대까지 40여년간 이 곳에서 거했다. 그러나 메사에 의해 이 곳은 다시 정복당했다. 이곳 메드바 교회 바닥에는 모자이크로 된 지도가 유명하다.

(7) 텔 헤스본
  헤스본은 요단강 하류, 사해 최북단에서 동편으로 약 25㎞되는 곳에 있다. 이 곳은 와디 헤스반의 남쪽에 위치해 있는 오늘날의 헤스반(Hesban)이다. 민21:26에 보면 “헤스본은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도성이라”고 하는 기록이 있으며, 모세는 이 성을 취하여 르우벤 지파에게 주어 북방 갓 지파와의 경계의 요해지를 삼았다(민 32:37). 모압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헤스본 주변 지역을 놓고 잦은 싸움을 했는데 모압의 에글론 왕이 차지했다가(삿3:12) 사사들의 노력으로 이스라엘이 다시 점령했다(삼상12:9,11). 이 지역은 아합이 죽은 이후까지도 이스라엘의 영토였다가(BC853년) 모압의 메사가 대원정을 통해 다시 점령했다. 이 때부터 이 지역은 모압의 땅이 되었으며, 모압에 대한 신탁에서 한번 이상 언급되고 있다(사15:4, 16:8~9  렘48:2,33~34). 헤스본은 BC600년경 암몬 인들에게 멸망당한 것 같으며(렘 49:3), 암몬인들은 이 지역의 소유권을 선포했다(삿11:29).

(8) 우리아 장군이 죽은 랍바(암만) 성
  랍바(Rabbah, 암만)는 오늘날 암만으로 요단강에서 동쪽으로 약 35㎞ 지점의 요르단 고원지대에 있다. 랍바는 “왕성”과 “물들의 성”(삼하12:26~27)으로 불리우며 완전한 이름은 암몬 족속의 랍바(신3;11, 삼하12:26)이고, 랍바는 그 단축형이다(삼하11:11, 렘49:3, 렘49:3). 이 도시의 이름은 헬레니즘 시대에 톨레미 필라델푸스(BC285~246)에 의해 재건된 후에 필라델비아(Philadelphia)로 불리우게 되었으며 후에는 이 명칭이 사라지고 암만이라 불리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BC21세기초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랍바는 다윗 때 요압에 의해 함락되었으며(삼하12:28), 우리아는 다윗에 의해 이곳 성을 공격하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은 후에는 독립을 쟁취하여 트랜스 요르단 지역의 북이스라엘을 압박하였다(렘49:1~3). 선지자들은 암몬인들에게 분개하여 랍바의 파멸을 예언했다(겔21:20, 암1:14). 이후 랍바는 이스라엘 멸망 후에 앗수르의 지배를 받았고 계속해서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 랍바(암만)에는 중세와 비잔틴 시대, 로마, 헬라 도시들의 유물들이 있다. 암만 공항 근처에서는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성소가 발굴되어 무기, 인장, 갑충석, 보석과 도기들이 출토되었으며, 고대 도시 성곽에서는 로마 시대의 유적이 가장 많이 나왔다. 특히 두개의 성소 폐허와 집단 제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비잔틴 시대의 교회터가 있고 알현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9) 야곱이 건넌 브니엘과 근처의 얍복강
  얍복강은 요단 동편 북쪽의 야르묵강과 남쪽의 아르논강 중간에 있는 중요한 지류 중의 하나로 오늘날 명칭은 나르 에즈 제르카(Nahr ez-Zerqa)이다. 얍복이란 이름은 물이 흐를 때 물결치는 소리에서 유래되었다. 이 강은 랍바 암몬 근처에서 발원하여 북으로 4~5㎞ 나가다가 서쪽으로 구부러져 깊은 협곡을 따라 흘러 사해 북쪽 요단강 약 24㎞ 지점으로 흘러들어 온다. 강 길이가 80㎞나 되는 이 강은 경사률이 높아 물살이 세고 흐름에 변동이 없으며 가파른 둑이 천연의 경계선을 이루고 있다. 특히 이 강은 길르앗을 양분하고 있는데 남쪽을 길르앗 절반이라 부르고 북쪽 부분을 길르앗의 남은 땅이라 부르며 성서시대에는 암몬의 영토로 존재했었다. 이 강변 주위에서 발견된 수많은 거주지 유적들은 성경에는 언급이 없지만 고대에 이 지역에 인구가 조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강 주위의 성읍으로는 거라사, 마하나임, 브니엘, 숙곳, 아담 등이 있다. 야곱은 이 강가에서 하나님(어떤 사람)과 겨루어 이긴 후 새 이름을 받고 이 곳을 브니엘이라 했다(창32:22~32).

(10) 야곱이 우릿간을 지은 텔 숙곳
  숙곳(Succoth)은 요단강 동편, 얍복강 북쪽 약 3.2㎞ 지점에 소재한 성읍이다(수13:27). 이 곳의 동쪽으로는 언덕이 있고, 서쪽으로는 요단강에 이르는 오솔길이 나있다. 이 언덕은 와디 라엘(Rajeb)과 제르카강 사이에 있는 고르아브 오베이테(Chor Abu Obeideh)로 알려진 매우 비옥한 지역 위에 솟아 있으며, 이 지역이 바로 시편에서 언급되어 있는 숙곳 골짜기이다. 숙곳은 “천막”, “오두막” 또는 “작은 양우리”라는 뜻이 있다. 이 성읍의 이름은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그의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자기 집과 가축들을 위해 우리를 만들어준 일로 인해 붙여졌다(창33:17). 또한 이 성읍은 헤스본 왕 시혼(Sihon)의 영토 일부로서 갓 지파에게 주어졌다(수13 :27). 이곳 주민들은 기드온 병사들에게 음식 제공을 거절함으로 기드온에게 잔인한 형벌을 당하였다(삿8:5~9,14~16). 그리고 솔로몬 성전에서 쓸 놋그릇들이 숙곳 근처에서 주조되었다(왕상7:46, 대하4:17).

(11) 성경의 거라사 지역 중 한 곳인 오늘날 제라쉬
  거라사는 성경에서 “거라사인의 땅” 또는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언급되는데 이 곳은 하나의 넓은 지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예수께서 군대귀신 들린 거라사(쿠르시)와 오늘날 제라쉬로 불리는 거라사는 거라사인 지역의 각각 다른 위치에 있는 성이다. 그중에 오늘날 요르단의 북부에 있는 고대 제라쉬는 요단강 동쪽 약 32㎞ 지점, 암만 북쪽 약 41.6㎞ 지점의 해발 600m에 위치해 있다. 이 거라사는 아랍 시대 이후에 제라시로 바뀌었다. 헬라어로 거라사라 불리워지는 제라쉬는 길르앗 지방의 헬라 도시였다. BC332년쯤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세워진 이 도시는 이후 로마에 점령당하여 로마의 속주 중 10대 도시(데카폴리스)의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12) 그릿시내
  뒤에 중앙에 보이는 산 언덕 부분이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홀라이다. 그릿 시내는 요단강 동편 길르앗 지역의 동쪽 고원지대에서부터 벧산 맞은편의 요단강으로 흘러드는 오늘날의 와디 야비스(Wadi Yabis)을 가리킨다. 그러나 중세 시대에는 그릿시내를 여리고 부근의 와디 켈트로 생각하기도 했다. 이 시내 근처에는 엘리야의 고향인 디셉과 그 옆에 있는 엘리사의 고향인 아벨므홀라가 있다. 이 시내는 북이스라엘의 아합왕 때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3년 반동안 비가 없어 가뭄이 들 때 선지자 엘리야가 몸을 숨겼던 곳이다(왕상17:2~7).

(13) 엘리야의 고향 디셉
  디셉은 요단 동편 그릿 시내(와디 엘 야비스)의 한 지류로 여겨지는 와디 엘 마스쿠프 근처 언덕 꼭대기인 리스팁(Listib)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위치상 큰 차이는 없지만 이보다는 글루엑이 주장한대로 와디 엘 야비스 지역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 이 곳에서는 엘리야와 관련된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다. 이 곳은 엘리야의 고향이다(왕하1:3, 왕상17:1).

(14) 가다라(움케이스)
  가다라는 성경에서 성읍으로 나타나 있지 않으나 지역으로는 언급되고 있다(마8:28). 그리고 이 곳은 막5:1, 눅8:26,37등에서는 거라사인의 지방으로 언급되었다. 오늘날의 가다라는 갈릴리 바다 동남쪽에 있는 요르단의 야르묵강(계곡) 온천지대인 엘 훔메 남쪽 4.5㎞ 떨어진 고지대에 있는 움 케이스에 폐허로 남아있다. 이곳에는 원형극장과 바실리카 회당 등이 아직도 상당 부분 남아있다. 성경에서 거라사와 가다라는 중복된 명칭으로도 사용되며, 일반적으로 거라사는 가다라를 포함하는 좀더 광범위한 지역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베타니아ㅡ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레를 받으셨던  요르단 동편

순례예정지 베타니아 와 성당

▣메드바ㅡ성당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