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이도시는 나일 델타(삼각주)의 바로 아랫부분, 델타와 사막 지역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나일강을 따라 도시가 발달했으며, 도심은 나일강 양안과, 중간의 섬인 게지라, 로다 섬에 펼쳐져 있다. 강 오른쪽에서 도시가 출발했으며, 시내는 구 시가지와 유럽식 신시가지로 나뉜다. 구 시가지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나깁 마흐푸즈(영어 Naguib Mahfouz)의 소설 '카이로 3부작' 등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구 시가지는 카이로의 대표적인 모스크인 알 아즈하르 모스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다. 카이로는 '1000개의 미나렛(첨탑)을 가진 도시'라고 불리는데, 알 아즈하르 모스크 인근에는 중-근세에 수없이 많은 모스크들이 들어섰다.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이 세운 카이로 성(영어로는 citadel, 아랍어 발음은 Qalaa)의 성곽과 그 안에 자리잡은 거대한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는 지금도 카이로를 찾은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이슬람 시대 카이로의 최대 건축물이다
카이로 기후
기후 표: 카이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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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최고기온기록 °C (°F) | 31 (88) | 33 (91) | 38 (100) | 45 (113) | 47 (117) | 47 (117) | 43 (109) | 43 (109) | 42 (108) | 43 (109) | 38 (100) | 38 (100) | 47 (117) |
평균최고기온 °C (°F) | 18 (64) | 19 (66) | 23 (73) | 27 (81) | 32 (90) | 35 (95) | 36 (97) | 35 (95) | 32 (90) | 29 (84) | 24 (75) | 20 (68) | 27 (81) |
평균최저기온 °C (°F) | 8 (46) | 9 (48) | 11 (52) | 14 (57) | 17 (63) | 20 (68) | 21 (70) | 22 (72) | 20 (68) | 18 (64) | 14 (57) | 10 (50) | 15 (59) |
최저기온기록 °C (°F) | 2 (36) | 2 (36) | 3 (37) | 6 (43) | 9 (48) | 13 (55) | 16 (61) | 17 (63) | 14 (57) | 11 (52) | 6 (43) | 1 (34) | 1 (34) |
강수량 mm (inches) | 5 (0.2) | 5 (0.2) | 5 (0.2) | 3 (0.12) | 3 (0.12) | 0 (0) | 0 (0) | 0 (0) | 0 (0) | 0 (0) | 3 (0.12) | 5 (0.2) | 29 (1.14) |
일조 시간 | 217 | 224 | 279 | 300 | 310 | 360 | 372 | 341 | 300 | 279 | 240 | 186 | 3,408 |
출처: BBC Weather [1] September 26 2009 |
카이로의 주요 건축물
고대 파라오 시대 건축물
중-근세 이슬람 시대 건축물
카이로의 옛 도심 알 아즈하르 모스크인근 지역에는 이슬람 시대 사원과 성곽, 영묘, 학교인 마드라사가 수없이 많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살라딘이 세운 카이로 성(영어명 Citadel,아랍어 발음은 Qalaa)인근으로부터 북으로는 파티마 성곽의 북쪽 지역에까지 이르는 지역이다. 남북으로 4킬로미터가 넘는다. 대표적인 사원으로 알 아즈하르 모스크, 핫산 술탄 모스크(영어명 Sultan Hassan Mosque), 이븐 툴룬 모스크, 알 하킴 모스크, 리파아이 모스크가 있다. 후세인 모스크에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의 목이 안치되어 있다고 하며, 이로 인해 시아파들은 이 사원을 중하게 여긴다. 카이로 성에 서있는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는 지대가 높은 성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어디서나 눈에 띈다.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었던 시대에 세운 만큼 오스만 양식으로 지어졌다.
옛 도심에는 직사각형의 도시를 에워쌓던 성곽과 성문이 일부분 남아 있다. 특히 북쪽의 성곽과 성문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나스르 문'(현지 발음: 밥 알 나스르)과 '푸트흐 문'(밥 알 푸트흐) 두 개의 성문과, 10미터가 넘는 높이에 길이 수 백 미터에 이르는 성곽이 있다. 성의 남쪽에는 성곽은 남아 있지 않고, 성문인 '즈웨일라 문'(밥 알 즈웨일라)이 서 있다.
남문인 자와일라 문과 북문인 푸트흐 문을 잇는 성내 도로가 성의 간선 도로였다. 두 문의 중간 정도 거리에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서있다. 남문인 자와일라 문을 나와 남쪽으로 내려가면 카이로 성이 나오는데, 남문과 카이로 성 사이에도 수많은 이슬람 건축물이 있으며 이중 대표적인 게 힛산 술탄 모스크, 리파아이 모스크다.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예수 피난성당 & 모세기념성당
아기 예수 피난교회는 요셉, 마리아와 아기예수 성가족이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하던 중 머물던 성스러운 장소에 건축된 것이다. 이들은 요셉이 이 지역 요새에서 일하는 도중에 이곳에 살았을 것이다. 건축 당시 이 교회는 AD 303년 시리아에서 로마 황제 막시밀란(Maximilan)의 손에 순교 당한 성자이자 군인인 서지우스(Sergius)와 바쿳(Bacchus)에게 바쳐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건물은 아직도 초기 콥틱 교회(이집트 원주민의 기독교 교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성가족과 연관되어서 성지로 알려지면서 이 곳을 찾는 신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집트에는 전설적인 아기 예수 피난 성당이 여러 곳에 세워져 있으며, 이곳의 마타리야 콥트정교회 성당도 그 중의 하나이다. 헤로데의 아기들 학살을 피하여, 아기 예수를 모시고 이집트로 긴 여행을 떠난 성모님과 요셉은 파견된 추격자를 피해 여기저기 숨어 다녔다고 한다. 이 마타리야 콥트 정교회 성당은 아기 예수 일행이 이집트에 올 때와 이스라엘로 갈 때에 두 차례 들렀다고 하는 곳에 세워져 있다.
정문 위쪽에는 라틴어로 '이집트 피난 중의 성가정'이라는 표지가 있다.
지금은 콥트교회가 관리하고 있는 아기예수 피난 성당은 공동묘지 담을 따라 들어가는 골목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지하로 들어가는 아기예수 피난 성당은 로마양식을 본따 만든 가장 오래된 성당중의 하나로 알려진다.
약 1,400여년 이상된 건물이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내부는 열두개의 기둥으로 3단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이 열두개의 대리석 기둥은 열두사도를 상징한다.
전체적으로 건물이 보수가 잘되지 않아 지저분하고 낡았지만 지금도 콥트교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성
당 지붕은 노아의 방주를 본따서 만들어졌다.
벽에는 1,400년전에 그려진 예수님의 탄생에서 수난, 부활에 이른 생애를 그린 성화,이콘들이 있었다.
알지 못하는 초대교회 성인들의 그림도 있었다.
정교회나 콥트교회.같은 동방교회의 제대는 우리 성당처럼 열린 제대가 아니고
마치도 유대회당의 지성소처럼 휘장에 가려져 있어 사제들만 들어가 전례를 거행한다.
지성소는 성모님의 모습을 수놓은 두꺼운 천으로 가려져 있다.
지성소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칸막이가 쳐진 계단이 있는 동굴이 있다.
그곳이 바로 아기예수님과 마리아 요셉이 이집트로 피신하여 지낸 동굴이었다.
그러니까 이 성당의 지성소는 예수님의 피난동굴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간단하게 성가정의 이집트 피난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마태오 복음 3장 13절-15)
실제로는 하루하루의 양식에 대한 걱정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의 두려움을 감수하는 생활이었을 것이다.
성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아기예수를 돌보았을까, 하느님은 과묵하고 신앙이 깊은 성요셉을 보내시어 당신의 아들을 지키게 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의 생애는 출생부터 고난을 동반한 삶이었음을 묵상하게 해주는 장소였이다
회교국가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 콥틱 교회의 신자들은 자식을 낳으면 손등에 십자 표시를 문신으로 새기면서 까지 1,400년 이상을 신앙을 지켜왔다니
그들의 신앙이 우리 한국순교성인들에게까지 영향을 준것이 아닐지...
아기예수피난 성당 앞에는 기념품가게인지 성물 방인지 모를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모세기념회당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모세 기념회당은 성당에서
채 오 분 거리도 안 되는 좁은 골목길은 돌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로마시대에 만들어진 길이라고 했다.
모세기념회당의 내부에는 모세의 십계판 모형이 보관되어 있는 모세의 제단이 있다.
회당 중간쯤엔 두루마리함이 놓여있는데, 그곳에 모세 5경을 보관하고 모임을 할때마다 펼쳐 읽었다고 전해진다.
작고 아담한 이회당터는 모세가 물에서 건져진 장소이기도 하고, 모세가 광야로 나가기 전에 기도를 했던 장소이며 출애급 당시에 이집트 델타지역에 살던 이스라엘인들의 출발장소로 알려졌다.
이장소는 또 예루살렘이 함락된 다음,
예언자 예레미야가 설교한 장소이기도하여 구약성경의 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원래는 콥트교회의 부속 건물로 지은 건물이어서 AD4세기부터 AD9세까지는 성미카엘교회, 가브리엘교회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집트의 이슬람 왕조가 모스크 건축을 위해 교회에 막중한 세금을 부과하자 (금1,5톤?) 그리스도교회에서는 몇 개의 교회건물을 팔아 세금을 내게 되었다. 그때 이 회당을 유대인들이 매입하여 유대회당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슬람에 의해 파괴 되었는데 1115년에 이스라엘의 랍비 벤 에즈라가 이곳을 방문하고 전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모금운동을 벌여 이 회당을 재건하였다. 그때부터 이 회당은 유대랍비의 이름을 따서 벤 에즈라 기념회당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악화되기 전인 후 AD1965년 까지 천여 년 동안 아랍지역의 유다교 공동체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나니 왜 아기예수의 피난성당과 유대회당이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지 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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