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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n/書藝

금문과 석고문

 

 

 

銅에 새긴문자(金文) ▲ ▽

 

 

옛날 사람들은 銅 을 金이라 불렀기 때문에 청 동기위에 문자를 주조한 것을 <금문 金文> 또는 <吉금문자> <이기문자彛器文字>라고도 부른다

은왕조에 사용되던 갑골문자는 청동기시대를 맞으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은왕조 말기 부터 周왕조에 이르러 모필로 글씨를 쓴다음 

이 모양대로 새겨서 주조하거나  직접 청동그릇위에 새기기도 했다

 

<周代金文> ▼

散盤 △

위 산반즉 산씨반명은 眉地의 境界劃定에 관해 서술 한 것이다

 

毛公鼎 △

솥안쪽에 금문 전서가 새겨져 있다

 

<석고문>▼

 

석고문은 중국에 현재 남아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각문자(石刻文字).

 

당대(唐代:618~907) 초기에 섬서성[陝西省] 천흥현(天興縣:지금의 봉상 현[鳳翔縣])에서 발견되었다. 석고는 모두 10개였는데

각 돌마다 모두 4언시(四言詩) 1수 씩 새겨져 있었다. 10개의 석고는 각각 오거(吾車)·견면(汧沔)·전거(田車)·칙홀(勅來)·영우(霝雨)·

작원(作原)·이사(而師)·마천(馬薦)·오수(吾水)·오인(吳人)으로 나누어 지며 이를<陳倉十碣>이라고도 불렀다

舊說에는 모난 것을 碑(비)라 하고 둥근 것을 碣(갈)이라 했는데,  석고는 원형으로 되어있고 새겨진 文詞는 거의 사냥에 대한 일을

기술 하였기때문에 獵碣(엽갈)이라 한다.

<석고문>의 서법은 온화 하면서도 그윽하고, 필세는 웅장 하면서도 두텁고 소박하면서도 자연미가 있다. 결구는 네모진 형태를 띠

면서도 단정하고 무겁게 응축 되어있다

석고의 연대는견해가 여러가지 있으나, 진나라 <진공돈>의 발견으로 그 자체가 <석고문>과 비슷하고<조초문>과도 비슷해 그 연대는

춘추 말기 秦나라의 것으로  본다.  <왕국유>는 전국시대는 진나라의 주문(籒文)을 사용하였고 육국은 고문을 사용했는데

넓은 의미의 주문(籒文)은 대전과 소전 고문을 포함하고, 좁은 의미로 말 한다면 단지<사주편>에 있는 문자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즉,

주나라 문자로 秦의 재상이던 李斯가 이를 근거로 하여 소전을 만들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주문>를 대전이라 한다 

 

 

 

<秦公敦>

 

<조초문>

 

 

<王孫遺者鐘>

 

★ 한문의 서체로 구분 할 때 갑골문 금문 석고문은 篆書(전서)체에 속한다★

 

전서(篆書)는 고문의 자체와 서풍이 정리된 것으로서 대전(大篆)·소전(小篆)의 2종이 있다. 대전은 주문(籒文)이라고도 불리고 (周)의 사주(史籒)가 만들었다고도 전해진다. 소전은 대전의 체세(體勢)를 길게, 점획(点劃)를 방정하게 하여 서사(書寫)를 편리하게 한 것으로서 진시황제의 문자통일 때에 승상 이사(李斯)가 창시하였다고 한다

대전은  소전 이전의 문자로 넓은 이미로는<갑골문> < 鐘鼎文> <籒文 > <六國文字>등을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주문(籒文)을 말 한다.(주문;영동, 영이,사송돈,산반,모공정,국자첨,진공돈,왕손유자종)과 < 석고문>< 진공궤>도 대전에 속 한다.

소전에는  역산각석,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지부각석, 갈석문각석, 회계각석등이 있다 

 

 

母憂拂意 母喜快心 母恃久安 母憚初難

 일이 뜻대로 되지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마음에 흡족 하다고 기뻐하지 말라 오래도록 편안함을 믿지 말고 처음이 어렵다고 꺼리지 말라

<山民 선생님의 채근담 (46㎝ⅹ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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