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月光)으로 짠 병실(病室)
박영희(朴英熙)
밤은 깊이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끊임없이 구르고 또 빠져서 갈 때
어둠 속에 낯을 가린 미풍(微風)의 한숨은
갈 바를 몰라서 애꿎은 사람의 마음만
부질없이도 미치게 흔들어 놓도다.
가장 아름답던 달님의 마음이
이 때이면 남몰래 앓고 서 있다.
근심스럽게도 한발 한발 걸어오르는 달님의
정맥혈(靜脈血)로 짠 면사(面絲) 속으로 나오는
병(病)든 얼굴에 말 못하는 근심의 빛이 흐를 때,
갈 바를 모르는 나의 헤매는 마음은
부질없이도 그를 사모(思慕)하도다.
가장 아름답던 나의 쓸쓸한 마음은
이 때로부터 병들기 비롯한 때이다.
달빛이 가장 거리낌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위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만 병실(病室)을 만들려 하여
달빛으로 쉬지 않고 쌓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빈 나의 마음은
이 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
한숨과 눈물과 후회와 분노로
앓는 내 마음의 임종(臨終)이 끝나려 할 때
내 병실로는 어여쁜 세 처녀가 들어오면서
― 당신의 앓는 가슴 위에 우리의 손을 대라고 달님이
우리를 보냈나이다 ―.
이 때로부터 나의 마음에 감추어 두었던
희고 흰 사랑에 피가 묻음을 알았도다.
나는 고마워서 그 처녀들의 이름을 물을 때
― 나는 ‘슬픔’이라 하나이다.
나는 ‘두려움’이라 하나이다.
나는 ‘안일(安逸)’이라고 부르나이다 ―.
그들의 손은 아픈 내 가슴 위에 고요히 닿도다.
이 때로부터 내 마음이 미치게 된 것이
끝없이 고치지 못하는 병이 되었도다.
('백조' 3호, 1923.9)
▶ 참고자료
박영희(朴英熙 1901 - ) : 호는 회월(懷月), 서울 출생 1921년 시 전문지 ‘장미촌(薔薇村)’동인 1922년 문학 동인지 ‘백조’ 동인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조직 주도 1950년 6․25 때 납북 시집으로 ‘회월 시초’(1937)가 있다.
'백조'의 ‘병적 낭만주의’는 3․1 운동의 실패로 인한 ‘민족적 좌절감’과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서구 낭만주의의 ‘세기말적 경향’, 그리고 그러한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된 ‘개인적 성향’이 3박자를 이루어 만들어진 것이다. <꿈의 나라로>, <유령의 나라>, <월광으로 짠 병실>로 대표되는 박영희의 시는 바로 그 ‘병적 낭만주의’의 실상을 보여 주는 작품들로, 온통 감상(感傷) 투성이의 현실 도피성 영탄일 뿐이다.
박영희는 후에 팔봉(八峰) 김기진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고 ‘감상’을 탈피한 다음, 1925년 단편 <사냥개>를 발표하면서 신경향파로 기울어져 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핵심적 지도 이론가로 변모하였다가, 결국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 자신이었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향하게 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병실’은 현실적 공간으로서의 병실이 아니라, ‘달님’을 사랑하게 되면서 마음의 병을 앓게 된 시적 화자가 거처하고 있는 정신적 공간이다. 따라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화자에게 달님이 보내 준 ‘슬픔’․‘두려움’․‘안일’이라는 이름의 의인화된 정서는 그를 ‘끝없이 고치지 못하는 병’에 빠뜨리게 한 유치한 감상으로 시인의 현실 인식 태도가 어떠했는가를 알게 해 준다. 시인이 아호를 ‘회월(懷月)’로 삼은 것을 생각하면, 아마도 이 작품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의 시는 결국 ‘갈 바를 모르는 헤매는 마음’으로 ‘부질없이’ 달빛만 ‘사모하’는 ‘어린애같이’ 저급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평가를 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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