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溪茅屋獨閑居
임계모옥독한거
月白風淸興有餘
월백풍청흥유여
外客不來山鳥語
외객불래산조어
移床竹塢臥看書
이상죽오와간서
시냇가 띠집에 홀로 한가롭게 사니,
달 희고 바람 맑아 흥취는 남음이
있음이라.
바깥 손님 오지 않고 산새들만 지저귀니,
평상을 대밭으로 옮겨 누워 책을 봄이라.
송하선인도 - 윤두서작-
요점 정리
지은이 : 길재
형식 : 칠언절구
운자 : 거, 여, 서
주제 : 한가로운 전원 생활에서 느끼는 흥취.
내용 연구
술지 : 뜻을 술회하다. 뜻에 따라 행함
임계 : 시냇가에 다달음.
흥유여 : 매우 흥겹다.
외객불래 : 아무도 찾아오지 않음. 기구의 '독한거'와 연결.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 ' 외객'은 속세
사람
산조어 : 산새가 지저귀다. 어는 새, 벌레 따위가 우는 소리로 산새의 지저귐을
의인시한 표현
죽오 : 대나무가 있는 언덕, 대밭.
이해와 감상
산림에 숨어 자연을 벗하며 학문에 전념하는 전원의 한가로운 생활을 읆음
심화 자료
길재
길재는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본관 해평(海平). 자 재부(再父). 호 야은(冶隱)·금오산인(金烏山人). 시호 충절(忠節). 금주지사 (錦州知事) 원진(元璡)의 아들. 구미 출생. 1363년 냉산(冷山) 도리사(桃李寺)에서 처음 글을 배웠으며, 1370년 박분(朴賁)에게 《논어》 《맹자》를 배우면서 성리학을 접하였다. 관료로 있던 아버지를 만나러 개경에 갔다가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권근(權近) 등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374년 생원시(生員試)에, 1383년(우왕 9) 사마감시(司馬監試)에 합격하고, 그해 중랑장 신면(申勉)의 딸과 결혼하였다.
1386년 진사시에 합격, 청주목(淸州牧) 사록(司錄)에 임명되나 부임하지 않았고, 다음해 성균학정(成均學正)이 되었다가, 1388년에 순유박사(諄諭博士)를 거쳐 성균박사(成均博士)로 승진하였다. 1389년(창왕 1)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고려의 쇠망을 짐작하여 늙은 어머니에 대한 봉양을 구실로 사직하였으며, 고향으로 가는 길에 장단에 있던 이색(李穡)을 만나기도 하였다. 1390년 계림부(鷄林府)의 교수가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우왕의 죽음을 듣고 마음으로 3년상을 행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李芳遠)이 태상박사(太常博士)에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뜻을 말하며 거절하였다. 1402년(태종 2)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불교식 장례법을 따르지 않고 성리학적 가례(家禮)를 따랐다. 세종이 즉위한 뒤 길재의 절의를 기리는 뜻에 그 자손을 서용하려 하자, 자신이 고려에 충성한 것처럼 자손들은 조선에 충성해야 할 것이라며 자손들의 관직 진출을 인정해주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도가 지극하며 세상의 영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연구하였기 때문에 그를 본받고 가르침을 얻으려는 학자가 줄을 이었으며, 김숙자(金叔滋)를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 등이 학맥을 이었다. 청풍서원(淸風書院)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야은집》 《야은속집(冶隱續集)》, 언행록인 《야은언행습유록(冶隱言行拾遺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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