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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n/書藝

예서(隸書)체

 

 

추사고택에서

 

 

전서(篆書)를 간략화한 것으로 좌서(左書)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중국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때 옥리(獄吏)였던 정막(程邈)이 옥에 종사하는 사무원(徒隸)들의 문서가 번잡한 것을 줄이기 위해 대전(大篆)을 개선하여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예서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나 소전(小篆)과 마찬가지로 진대에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며, 한대(漢代)에 전서를 대신해 공식문자로 통용되었다. 역사적으로 예서와 팔분(八分)·고예(古隸)·해서(楷書)의 명칭이 혼용되고 있으나, 가 중심이예서는 고예와 분예(分隸)다. 고예, 즉 진예(秦隸)는 전서를 빠르게 쓴 것으로 진대에 시작되어 전한 때 통용되었는데 파책(波磔 : 삐침)이 없는 소박한 서체가 특징이며 한대의 관지자체(款識字體)와 유사하다. 분예, 즉 한예(漢隸)는 고예가 변한 것으로 고예의 글자체와 거의 같으나 파책이 발달된 것이 특징이다. 후한시대에 완전한 형태가 이루어져 널리 통용되었고, 특히 비각(碑刻)에 많이 사용되었다. 위진(魏晉)시대 이후에는 차츰 파책이 약해지고, 여기에 점(點)·탁(啄)·도(挑)·적(趯)을 더하여 더욱 유연하고 매끄러운 서체로 변형되었는데 이것을 해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말기 완당 김정희의 독특한 예서와 이광사의 예서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秦隸

이사가 쓴 표준 각석외에 진나라 때의 금문 陶文이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다 진예는 비교적  轉折한 곳에는 방각이 많고 각석의 규칙적인 장방향괴는 달리 방형에 가깝다

전예는 서사와 새기기에 편리하여 이러한 모양이 생겼기 때문에 소전을 간편이 쓴 서체라 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비>

<별이 습작  광개토대왕비>

 

 

▣八分書

漢의 대표적인 서체다

서한 시대에 글자체는 고예 진예였으나 팔분서의 仰揚波책의 消息을 들어냈고 동한에 이르러 팔분체가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팔분의 여러 특징이 있으나 가장 큰 특징을 이루는 것은 波책이라 할 수있다

팔분을 왕차중이나 채옹이 만들었다하나 모두 사실이라 볼 수 없다

<팔분서>라 명칭은 위.진때부터 시작되었으나 역대로 이에 대한 해설은 구구하다

<팔분>은전서와 예서의 중간에 있는 서체라고도 하고 글자가 사방 八자 모양으로 나뉘어 있는 해서라고도 하여 한결 같지 않다

예서를 팔분이라 부르는 것은 서체의 모양이 八자 처럼 좌우로 등지고 파책이 성숙된 예서의 형태이기 때문이다<한예>의 넓은 의미는 양한시대의 예서를 통칭하여 부르는 말이다

고봉한의<팔분설>을 인용해 보면예서는 '필획이 평평하면서도 곧은 것으로는 전서의 번잡함을 없애 버리고 예서에 掠(약).捺(날)의 필회을 가한게 <팔분>이라고다' 라고 하였다 예서는 당 나라에 이르러 한예의 기초를 발판으로 하여 이를 계승.발전시겼다

 

한나라의 예서(漢隸)

장천비,을영비, 사신비,예기비,조전비, 한예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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