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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n/한국현대시&번역시

.<떠나가는 배>/박용철

1.<떠나가는 배>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아 사랑하는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2.<싸늘한 이마>

큰 어둠 가운데 홀로 밝은 불 켜고 앉아 있으면 
모두 빼앗기는 듯한 외로움
한 포기 산꽃이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위로이랴

모두 빼앗기는 듯 눈덮개 고이 나리면 
환한 왼몸은 새파란 불 붙어 있는 인광
까만 귀뚜리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한 기쁨이랴

파란 불에 몸을 사르면 
싸늘한 이마 맑게 트이어 기어가는 신경의 간지러움
길 잃은 별이라도 맘에 있다면 얼마나한 즐검이랴


#[작가소개]
박용철(朴龍喆,1904~1938), 호는 용아(龍兒).
전남 광주 출생. 배재 고보 수료. 일본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과를 거쳐 연희전문에서 수학. 1930년, 김영랑과
<시문학>을 창간. 이 잡지 1호에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떠나가는 배>,<밤 기차는 그대를 보내고>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재질은 시 창작에서보다 순수시의 기치를 옹호하는
시론에서 더 많이 발휘되었다. 작품자체에서 심리적 구조 이외의
요소를 불순한 것이라고 배제하려는 태도와 함께 외국 문학의 
이론을 폭 넓게 수용하고자 하는 자세로 일관한 시인이었다.
한국 문예사에 끼치고 있는 그의 발자취는 세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1930년대 벽두 순수시 전문지<시문학>을 창간하고 
정지용,김영랑, 변영로,신석정 등을 그 동인으로 맞아들임으로써
격조높은 순수시의 집단이 형성되는 길을 열었다.
둘째, 괴테.실러.릴케 등 독일계 시인들의 작품 및 키이츠.테니슨.
브라우닝.예이츠 등 영미계 시인들의 작품을 광범위에 걸쳐 수용,
소화하여 한국 근대시의 시야를 넓히는 데 공헌한 바 있다.
셋째, <시문학>을 비롯하여, <문예월간>,<문학> 등 순수 문예지를 
발간, 1930년대의 시인과 작가들에게 작품 발표의 무대를 제공했다.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박용철 전집>(1939)이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