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나무꽃의 일부
말의 귀를 닮았다는 특별한 모양새의 마이산 두 봉우리를 뒤로 돌아 들어가다 보면 마령읍과 마주친다. 초입새에 새 건물로 말끔히 단장한 마령초등학교가 있고, 정문 안쪽의 좌우에 아름드리 이팝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천연기념물 214호다. 지금은 학교 운동장 한 구석의 정원이 되어 있지만 옛 이름이‘아기사리’다. 우리 선조들이 먹을거리 때문에 당한 아픔의 현장, 제대로 먹지 못한 아이들이 부모 가슴에 못을 박고 잠들어 있는 곳이다.
모여 핀 이팝나무꽃
옛날 마령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명을 다 못하면 원래 야트막한 동구 밖 야산이었던 이 자리에 영원히 잠재웠다고 한다. 배불리 먹이지 못한 탓에 영양실조로 시달리다가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가슴앓이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작은 입에 흰 쌀밥 한 술 마음껏 넣어 준적이 없는 무능함이 통곡으로 이어졌고, 일상으로 돌아온 부모는 죽은 아이의 영혼이나마 흰 쌀밥을 마음껏 먹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해 보지 않았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꽃피는 모습을 상상해 보고 이팝나무를 심어두면 두고두고 아이의 영혼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믿었다.
멀리서는 쌀밥그릇처럼 보이는 이팝나무꽃
5월 중순에 피는 이팝나무의 꽃은 마치 쌀알처럼 생긴 새하얀 꽃잎들이 수없이 모여, 새로 돋아난 연초록 나뭇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덮어버린다. 배고픔에 먹을거리의 허깨비를 수없이 보아온 사람들의 눈에는, 이팝나무 꽃의 모습이 수북하게 올려 담겨진 흰 쌀밥 한 그릇과 영락없이 같아 보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묻고 돌아서는 부모들은 한 그루 두 그루 이팝나무를 갖다 심기 시작하였다. 작은 영혼들이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이밥’이 달리는 이팝나무 숲이 자연스레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개화의 바람을 타고 초등학교가 여기 저기 설립될 즈음, 아무도 지켜주지 않은 아기사리는 학교 부지로 편입되어 버린다. 슬픈 기억들을 몸속 깊숙이 간직한 이팝나무 들은 이때 대부분 사라지고 몇 그루만이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천연기념물이란 이름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