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목속의 전설(박상진 교수)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우리나라 고매의 본산이라면 순천 선암사의 매화들이다. 다른 곳의 고매들은 대개 1그루씩 남아 있는데 비하여 이곳은 20여 그루가 한꺼번에 모여 자란다. 이 중 백매(白梅) 1그루와 홍매(紅梅) 1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백매는 높이 8.2m, 뿌리목 줄기 둘레 1.7m, 둥그스름한 모양새를 갖고 있다.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진한 탓인지 꽃이 그렇게 많이 달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비교적 고매의 품위를 느낄 수 있는 나무다.
홍매는 대웅전 북동쪽에 자리 잡은 무우전 옆, 운수암으로 올라가는 길의 돌담을 따라 늘어선 10여 그루의 다른 고매들과 함께 자란다. 꽃 색깔이 연분홍빛이고 나무 높이 7.3m, 뿌리목 줄기 둘레 1.5m 정도이다. 나이는 600년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필자가 선암사의 화재 기록 등을 참고하여 추정해보면 둘 다 250~350년 정도로 생각된다.
천연기념물 488호 선암사 백매
장성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1863년 경 백양사가 큰 홍수를 만나 대웅전 등 주요 건물들이 훼손되자 절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짓기로 결정한다. 스님들은 아껴오던 매화나무 들 중 모양새가 좋은 홍매와 백매 각 한 그루씩을 옮겨 심었으나 백매는 오래지 않아 죽어 버리고 홍매만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 나이는 대체로 300년 남짓하다. 나무는 높이 5.3m, 뿌리목 줄기둘레 1.5m 정도이고 땅위 70cm쯤에서 줄기가 셋으로 갈라져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단정하게 가지가 뻗어 나무의 품격이 한층 돋보인다. 나무 전체를 뒤집어 서듯 수천 송이의 꽃이 달린다. 만개할 때는 분홍빛의 화사함을 만끽할 수 있고 약간 달콤한 향기를 맡고 있으면 마치 고승의 법어로 무아의 경지에 빠져드는 것 같다.
멀지 않는 광주의 전남대 본관 옆에는 1621년 중국 명나라 희종으로부터 하사 받았다는 대명매(大明梅)가 분홍빛 겹꽃을 피워 대학의 봄날을 한층 화창하게 만들어 준다. 선암매, 고불매, 대명매 이외에 담양 지곡리의 계당매(溪堂梅), 소록도 중앙공원의 수양매(垂楊梅)를 합쳐 흔히 호남오매(湖南五梅)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연기념물 486호 백양사 고불매
구례 화엄사 야매(野梅)
매화나무는 중국원산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과연 순수한 야매가 있는지 약간의 논란이 있다. 그러나 화엄사 본당에서 계곡으로 잠깐 올라간 자리에 있는 길상암 앞 이대 숲에는 야매로 판정을 받아 2007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가 있다. 나무높이 7.8m, 뿌리목 줄기 둘레 1.5m정도이나 오랫동안 이대 숲에 자라느라 제대로 수형도 잡이지 않았고 모양새도 별 볼품이 없다. 나이는 약 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이런 야매는 꽃과 열매가 재배 매화보다 작으며 꽃향기는 오히려 더 강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필자가 꽃과 열매의 크기를 직접 조사해 보았으나 재배 매화나무와 별다른 차이를 찾을 수 없었다. 앞으로 좀 더 과학적인 검정이 필요하다.
화엄사에는 이 야매이외에 흑매(黑梅)라 불리는 유명한 매화가 있다. 이 매화는 꽃이 붉다 못해 아예 검붉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꽃이 화려하고 한번 보면 인상이 너무 강하여 화엄사 스님들 까지도 이 홍매가 천연기념물 매화나무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 천연기념물 485호 화엄사 야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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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은 알려진 대로 신사임당과 셋째 아들인 율곡 선생이 여기서 태어났다. 율곡은 어린 시절을 오죽헌에서 보냈으며 신사임당은 매화를 즐겨 그렸고 맏딸의 이름을 매창(梅窓)이라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했다. 오죽헌의 건조시기가 15C초이며 처음 건물을 지을 당시 정원에다는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를 심어 선비집의 운치를 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사임당이 태어난 1504년에 오죽헌 매화나무는 벌써 나이 100여년을 헤아리고 있었다. 율곡이 어린 시절을 보낼 때인 16세기 중반에는 150여년이 넘는 고매가 되어 고아한 기품을 뽐내고 있었을 것이다.
정당매
가까이에는 고려 말 원정공 하즙 선생이 심었다는 원정매(元正梅)는 관리부실로 죽은 줄기만 남아있고, 남명 조식선생이 심었다는 남명매(南冥梅)는 비교적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 매화 들은 흔히 산청 3매라 부르기도 한다. 정당매는 산청의 매화 중 유일하게 1982년 경상남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남명매
그 외 그렇게 굵고 크지는 않지만 매화를 끔찍이도 사랑한 이퇴계 선생을 모신 도산서원의 매화도 볼만하며, 류성룡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병산서원에도 정제되고 깔끔한 모양의 매화 두 그루가 찾는 이를 반긴다.
도산서원의 퇴계매
![]() 전남대 대명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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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중앙공원 수양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