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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n/書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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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서 [草書] 넓은 의미로는 자체(字體)를 간략하고 빠르게 쓴 초체(草體)를 가리킨다. 초체는 문자를 빠르게 서사(書寫)한 것으로 전서의 경우는 전초(篆草), 예서의 경우는 예초(隸草)라 하며 중국 창사[長沙]의 묘에서 출토된 죽간(竹簡)과 서북지방 출토의 목간(木簡) 등에서 대전(大篆) 및 ..
楓橋夜泊/장계 (문징명 筆,유열 刻) 文徵明 중국 명(明)나라 때의 화가·서예가·학자.(1470~1559) 본명은 문벽(文璧). 스승인 심주(沈周)와 함께 중국에서 존경받는 문인화가들의 유파인 오파(吳派)의 중심인물로 여겨진다. 강한 유교적 가풍을 지닌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당대의 유명한 학자들을 많이 만났다. 천성..
행서체 해서(楷書)를 약간 흘린 서체로서 해서와 초서의 중간에 놓임. 후한시대 유덕승(劉德昇)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전하여지나, 예서(隸書)를 속필로 쓰기 위해 자연히 간편화되어 생겨진 서체이다. 해서가 하나의 서체로 인정된 것은 후한~삼국 위(魏) 무렵이며 목간(木簡)에 오래된 행서체의 ..
예서(隸書)체 추사고택에서 전서(篆書)를 간략화한 것으로 좌서(左書)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중국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때 옥리(獄吏)였던 정막(程邈)이 옥에 종사하는 사무원(徒隸)들의 문서가 번잡한 것을 줄이기 위해 대전(大篆)을 개선하여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예서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
북위 해서체 해서(楷書)를 정서(正書) 혹은 진서(眞書)라고도 한다. 해서는 예서(隸書)에서 변화, 발달되었으며 후한(後漢) 말기에 이 서체를 볼 수 있지만 독립된 서체로서 완성되지 못하고 위 ·진(魏晉) 이후에 비로소 예술적으로 완성되었다. 그 당시 해서를 금례(今隷)라 한 것을 보면 그 발생과정..
청대(淸 代) 전서 청대 유물ㅡ 차 주전자 오창석의 西령印社記 오창석 (吳昌碩) 1844∼1927) 전각 서화가다 본명(本名)을 준(俊)이라고도 하였고, 또 준경(俊卿)이라고 하였으나 신해혁명(辛亥革命)이후 자(字)인 창석(昌碩)을 이름 대신 사용 오양지(吳讓之)의 宋武帝與장勅 중국 청(淸)나라의 서화·전각가(..
대전(大篆)과소전(小篆) ■大篆은 고문을 정리 한 것으로 석고문이 그 대표다 중국 주나라 선왕때에 태사였던 주가 창작한 자체로 주문이라고 하며 소전의 전신이됨 ■小篆은 秦代에 태동한 중국 최초의 서체로 진시황으 명으로 승상이였던 李斯등이 그전에 흩어졌던복잡하고 불편한 문자를 통일 시킨것으로 '..
금문과 석고문 銅에 새긴문자(金文) ▲ ▽ 옛날 사람들은 銅 을 金이라 불렀기 때문에 청 동기위에 문자를 주조한 것을 <금문 金文> 또는 <吉금문자> <이기문자彛器文字>라고도 부른다 은왕조에 사용되던 갑골문자는 청동기시대를 맞으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여 은왕조 말기 부터 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