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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rn/나무&꽃

후손들의 평화와 희망을 염원하며 나무를 심은 도선국사 (고규홍 교수)

 

 

후손들의 평화와 희망을 염원하며 나무를 심은 도선국사
- 옥룡사터 동백나무와 이천 도립리 반룡송

 

  나무를 심는 건, 분명 스스로를 위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빨리 자라는 속성수(速成樹)라 하더라도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려면 나무를 심은 사람의 수명보다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결국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는 나무를 심을 수 없다. 또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배려심이 있어야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게 될 것이다.
  신라의 고승 도선(道詵, 827~898)국사도 그처럼 후손의 평화로운 삶을 기원하며 나무를 심었다. 도선은 특유의 풍수도참 사상으로 먼 훗날 이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의 삶을 배려한 특별한 승려였다. 그의 풍수지리설은 우리 민족의 실제 삶에 여러 형태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풍수지리를 비롯한 그의 생각은 나무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삶이 당대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긴 세월에 걸쳐 대대로 이어진다는 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선국사가 옥룡사터의 땅 기운을 북독우기 위해 심은 동백나무 숲.

 

아홉마리 용을 물리치고 절터를 닦아
  도선은 탄생 과정부터 남달랐다. 전라남도 영암의 구림마을에는 지금도 그의 탄생에 얽힌 오묘한 설화가 전해온다.
  당시 이 마을에는 최씨 성의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녀가 어느 날, 시내에 떠내려오는 싱싱한 오이를 집어 먹고 아이를 가지게 됐다. 최씨 처녀는 아이를 낳아서 아무도 모르게 뒷산의 바위에 버렸다. 며칠 뒤 갓난 아이의 안부가 궁금해진 처녀가 숲을 찾아갔더니, 바위 위에는 비둘기가 떼를 이뤄 날개를 활짝 펼치고 아이를 보살폈다고 한다. 그 아이가 바로 훗날 국사로 추증되는 도선국사였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비둘기 구(鳩)와 수풀 림(林)을 써서 구림마을이라 불렀으며, 비둘기 떼가 아이를 보호했던 그 바위는 국사암이라고 했다.
  도선은 열다섯 살 때에 지리산 화엄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풍수지리설을 널리 설파하여,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스님으로 이름을 떨쳤다. 명성이 궁궐에까지 알려지자, 헌강왕은 그를 초청하여 법문을 들었다고도 한다. 말년에 도선은 전남 광양의 백계산에 들어 절집 옥룡사를 짓고, 주석하면서 후학을 길러냈다. 이승에서의 삶을 마친 곳도 옥룡사였다.
  도선이 이 옥룡사를 처음 지을 때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 절터에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아홉 마리의 못된 용이 살던 연못이 있었다. 절집을 세우려 한 도선은 용들을 설득해 내쫓았다. 그러나 그 중의 하나인 백룡은 끝까지 버티고 연못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자 도선국사는 짚고 다니던 지팡이로 용의 머리를 내리쳐 눈을 멀게 하고, 이어서 연못의 물을 펄펄 끓게 했다. 끓는 물을 버티지 못한 백룡은 어쩌는 수없이 도망쳐야 했다. 

 

옥룡사터 동백나무 숲의 나무가 피워낸 붉은 동백 꽃

 

7천 그루의 동백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운 뒤 여전히 싱싱한 채로 떨어진 낙화.

 

전남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숲 국내 최대 군락지

옥룡사 옛 절터

옥룡사 동백나무 숲

땅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심은 동백나무
  도선은 백룡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절집 자리를 일일이 숯으로 공들여 닦아낸 뒤 절집을 지었다. 절집을 지으면서 그는 이 터의 땅 기운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됐다. 땅의 기운을 보(補)하기 위해 도선은 나무를 많이 심기로 했다.
  땅의 기운을 더해줄 수 있는 나무로 그가 집중적으로 선택한 나무는 사철 푸른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봄이면 붉은 핏빛으로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였다.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차가운 날씨에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의 강한 기운으로 약한 땅의 기운에 보태고자 한 것이다. 동백나무는 그가 이 절에 머무는 동안 갈수록 늘어나 아름다운 숲을 이루었고, 도선과 그 후예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오래도록 잘 지켜졌다.
  전설대로라면, 옥룡사터의 동백나무들은 무려 1천2백 살 쯤 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옥룡사터의 동백나무들은 그리 오래 된 나무가 아니다. 어림짐작으로는 이 숲에서 가장 오래 된 나무라 해도 3백 살이 채 안 돼 보이고, 어린 나무는 1백 살 쯤으로 보인다.
물론 도선국사가 동백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틀렸다는 건 아니다. 단 지금 이 숲에 살아 있는 나무들이 도선국사가 심었던 그 나무들은 아니라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다. 그때의 나무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 둘 스러져갔고 세월이 흐르면서, 예전의 나무들이 이 땅 위에 남긴 씨앗들이 저절로 뿌리를 내리면서 지금의 동백나무 숲을 이뤘다고 보는 게 온당할 듯하다. 

 

풍수 좋은 곳을 표시하기 위해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이천 반룡송

 

풍수 좋은 땅을 표시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어
  도선은 풍수지리 전문가 답게 생애 내내 나라 안의 풍수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풍수가 좋은 곳이 눈에 들어오면 나름의 방식으로 표시를 했다. 그 중에 함흥 서울 등의 다섯 곳에는 특별히 좋은 나무를 심어 표시했다. 무엇보다 오래도록 자신의 뜻을 표시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나무를 선택한 것이다.
  도선이 손수 심었다는 다섯 그루의 나무 가운데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바로 경기 이천 도립리 반룡송이라고 불리는 천연기념물 제381호의 소나무다. 반룡송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이 소나무는 산수유 꽃 잔치로 유명한 경기도 이천 백사면 도립리 마을 벌판에서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온 수호목으로 살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무 곁에는 여러 채의 살림집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살림집은 모두 사라졌다.
  들판 한가운데에 서 있는 반룡송은 그리 큰 나무가 아니다. 키는 고작 4.25미터 밖에 안 되고, 사람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 둘레도 2미터가 채 안 되는 왜소하다면 왜소하달 수 있는 규모의 나무다. 사방으로 펼친 가지의 품이 10미터 정도 된다는 것이 그나마 왜소한 크기를 보충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나무 가까이 다가가 줄기와 가지가 뻗어나간 모습을 바라보면 그 기이한 생김새에 저절로 감탄사를 내놓게 된다.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도, 나무의 이같은 기형적인 자람이 특별해서다. 

 

비틀리고 꼬이면서 솟아오른 신묘한 생김새의 반룡송 줄기

 

긴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희망을 지켜준 반룡송

 

사람의 소원을 한 가지씩은 꼭 들어줘
  반룡송이라는 이름 역시 그의 생김새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다소 생소한 한자인 ‘반(蟠)’은 뱀처럼 길다란 몸을 가진 짐승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는 뜻의 한자인데, 실제로 나무 줄기의 생김새는 여느 식물에서는 보기 힘든 동물적인 꿈틀거림이라고 할 만하다.
  반룡송이라는 한자 이름은 쓰기가 어려울 뿐더러 정확히 발음하기도 어려운 탓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만년을 더 살아갈 나무라는 뜻에설 ‘만년송’이라고도 부르고 그냥 용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무에 전설 속의 짐승인 용을 빗대어 이름 붙이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도립리 반룡송만큼 용트림 직전의 왕성한 꿈틀거림을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는 생김새의 나무는 흔치 않다.
  가는 곳마다 신비로운 이적(異蹟)을 행한 것으로 회자하는 도선이 골라 심었다는 전설에 기댄 탓인지, 이천의 반룡송에는 어느 누구라도 적어도 한 가지씩의 소원은 꼭 이뤄준다는 전설이 함께 전한다.
  도선국사는 나무를 심으며 장차 이곳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큰 인물이 나는 건 당연한 이치다. 도선국사가 굳이 이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난다고 덧붙인 건, 필경 어렵게 살아가는 대중들의 삶에 큰 희망을 주기 위한 세심한 배려 아니었나 싶다. 나무는 그렇게 사람들의 희망을 담고 천년을 살아온 것이다.
  반룡송도 그러나 옥룡사터의 동백나무들처럼 여느 소나무의 생장 속도에 비춰 볼 때 도선이 심었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기형목으로 특별한 방식으로 자랐다 해도 그렇다. 하지만, 민중의 전설을 과학적 잣대로 따지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삶의 은유를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신묘한 전설을 담고 서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바라보며 삶의 지혜를 톺아보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나무를 바라보아야 하는 가장 큰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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