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草書]
넓은 의미로는 자체(字體)를 간략하고 빠르게 쓴 초체(草體)를 가리킨다.
초체는 문자를 빠르게 서사(書寫)한 것으로 전서의 경우는 전초(篆草),
예서의 경우는 예초(隸草)라 하며 중국 창사[長沙]의 묘에서 출토된 죽간(竹簡)과 서북지방 출토의 목간(木簡) 등에서
대전(大篆) 및 한례(漢隷)의 초서가 보인다
동기창의 초서 시권
초서는 좁은 의미의 장초(章草)·금초(今草)·광초(狂草) 등이 있다.
한대(BC 206~AD 220) 초기의 것은 고초(古草)라 하며,
전한(前漢) 후반기에는 파책(波)을 수반하며 후한대에 글자체가 완성되는데 이것을 장초라 한다.
장초의 초기 형태는 한대의 목간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장초의 법첩인 사유(史游)의 〈급취장 急就章〉과 〈순화각첩 淳化閣帖〉에 있는
장지(張芝)·황상(皇象)·삭정(索靖) 등의 장초가 대표적이다.
후한말 새로 나타난 서체인 금초는 오늘날 흔히 사용되는
후한의 장지가 장초에서 파책을 제거하고 글자 상하의초서로 혈맥을 이어 창안했다고 하며,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왕헌지(王獻之) 부자가 완성했다.
금초에는 한 글자씩 쓰는 독초체(獨草體)와 붙여서 쓰는 연면체(連綿體)가 있다.
금초는 〈순화각첩〉에 실린 왕희지·왕헌지 부자와 장지의 글씨,
왕희지의 〈십칠첩 十七帖〉·〈상란첩 喪亂帖〉, 왕헌지의 〈지황탕첩 地黃湯帖〉 등에서 볼 수 있다.
광초는 당나라 장욱(張旭)이 시작한 것으로
전통적인 초서 필법에서 벗어난 것이며 술과 자연현상 등으로부터 얻은 정취나 영감에 의해 극도로 자유분방하게 쓴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장욱의 〈자언첩 自言帖〉, 회소의 〈자서첩 自敍帖〉 등이 있다
◆ 당나라의 孫過庭의 書譜는 해서와 초서의 서법을 천명한 것으로 때때로
아름다운 문장과 함께 서법 이론의명저로 손꼽히고 있다
<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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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를 배우다(習之山居)
그윽한꽃이나 잡다한 풀이나 봄 한 철로 족한데
십년수행이 부질없구나
새 한번 우는 소리에 한가롭던 꿈은 깨지고
화려했던 지난날과 흐르는 세월이 나를 괴롭히네
[장욱이 초서로 쓴 반야심경]
張旭三杯草聖傳(장욱삼배초성전) : 장욱은 세 잔은 마셔야 초서를 쓰는데
脫帽露頂王公前(탈모노정왕공전) : 모자는 벗고 맨머리로 왕공들 앞에 나타나서
揮毫落紙如雲煙(휘호락지여운연) : 종이 위에 붓을 휘두르면 구름 흐르고 연기 피어나듯.
광초의 달인 장욱이 돌아가신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초서로 반야심경을 써서 백탑사라는 절에다 봉안했는데, 그 탁본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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